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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민연금 43% 시대, 왜 아직 불안한가: 퇴직연금의 구조적 병목을 해부하고 해법을 제시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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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y 인베네비 2025. 8. 26. 07:0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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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3%로 상향되지만 노후가 든든해지려면 ‘퇴직연금’의 체질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. 지나친 중도인출·저수익·높은 비용·취약한 지배구조 등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, 기금형 도입·디폴트옵션 고도화·누수 차단·저비용 대형화·강제(또는 준강제) 연금화 등 단계별 해법을 제시한다.


1) 문제의식: 국민연금 보강만으로는 “노후소득 갭”을 못 메운다

국민연금법 개정으로 2025년 3월부터 **소득대체율 43%**가 시행된다. 의미 있는 진전임에도,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·생애근로 단절·비정규·플랫폼 노동 확대를 감안하면 ‘공적연금 단독’으로는 중위소득 대비 안정적 노후생활을 담보하기 어렵다. 학계·정책권에서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두 번째 축이 퇴직연금이다.

  •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약 431조원. 같은 해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(약 56조원)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돈이 매년 쌓인다. 그럼에도 이 거대한 풀은 연금소득화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한다.
  • 원인은 구조적이다. 중도인출·일시금 선호, 저수익·고비용, 계약형 지배구조의 한계, 소액·단기계정 난립, 연금화(Annuitization)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.

결론부터 말하면, 퇴직연금이 국민연금과 함께 추가 소득대체율 18~20%p를 보태려면(전문가 추정) 제도의 설계·운용·과세·행태를 동시에 손봐야 한다.


2) 데이터로 본 병목 4가지

① 연금이 아닌 “중간 정산금”이 된 제도

임금피크·주거·교육·사업자금 등으로 중도인출이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이직 시 해지도 쉽다. 결과적으로 퇴직연금은 노후 전 고갈되는 사례가 많다. 제도의 목적(생애 후반 소득 보전)과 실제 사용처가 괴리된다.

② 저수익·고비용의 만성 구조

최근 10년 국민연금 기금의 연평균 수익률이 5% 후반이었다면, 퇴직연금은 2%대 초반에 머문 해가 많았다.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이 0% 내외로 떨어지는 구간도 빈번했다.

  • 이유: 판매사·수탁사·운용사로 분절된 계약형(Contract-based) 구조, 상품 난립, 영업·유지비용, 가입자 비전문성, 액티브 펀드 과다, 벤치마크·성과보수 체계 미비 등.

③ 분절·영세 구조

이직·단기근로로 다수의 소액 계좌가 흩어진다.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못해 운용·보수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, 분산투자·대체투자 접근성도 떨어진다.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·단시간 근로자는 사각지대가 크다.

④ 낮은 연금화율

퇴직 시 일시금 선호가 강하고, 연금 전환을 유인·유압하는 장치가 약하다. 결과적으로 기대수명 증가에 비례한 장수위험을 개인이 떠안는다.


3) 왜 ‘계약형’이 한계인가: 지배구조의 경제학

계약형은 금융기관이 판매·운용을 주도하고 기업·근로자가 공급자 선택을 한다. 그러나

  • 공급자는 수익률 극대화보다 판매·유지에 유인이 붙는다.
  • 근로자는 정보 비대칭과 **행태적 편의(현상유지·과도한 위험회피·군집 매수/매도)**로 비효율적 선택을 한다.
  • 소규모 사업장은 협상력이 낮아 수수료가 높고 상품 질이 낮은 조합에 머문다.
    결과: 저수익·고비용의 균형(나쁜 균형)에 갇힌다.

4) 해법 1 — ‘기금형’ 도입: 한 몸처럼 크게, 싸게, 똑똑하게

핵심은 지배구조 전환이다. 기금형(Fund-based)은 독립된 이사회·전문 CIO·내·외부 위탁 다변화로 장기 성과를 목표로 한다.

  • 대형화/풀링(Pooling): 업종·지역 단위로 중소사업장 자산을 묶어 규모의 경제 확보(수수료 인하, 우수 운용사 접근, 대체투자 참여).
  • 수수료 상한+성과연동: 고정 보수는 낮추고, 벤치마크 초과수익에만 성과보수 부여(장기 유지 조건 포함).
  • 독립 거버넌스: 이해상충 방지(판매·수탁·운용 분리), 투자지침·위험예산(Risk Budget)·ALM(자산부채관리) 도입.
  • 공시·비교가능성: 순수익률(총보수 차감 후), 변동성, 손실확률, 회복기간, 벤치마크 대비 초과수익을 표준양식으로 공개.

5) 해법 2 — ‘디폴트옵션’과 생애주기 전략을 고도화

디폴트옵션(사전지정운용)은 이미 시행 중이지만, 구성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.

  • **TDF(타깃데이트펀드)·LDP(생애주기 포트폴리오)**를 기본값으로 설정, 연령·근속·소득에 따라 위험자산 비중을 자동 조정.
  • 저비용 인덱스 코어 + 위성(Satellite) 액티브 구조로 총보수를 0.3~0.4%p 구간으로 낮추는 로드맵 제시.
  • 글로벌 분산(미국/유럽/신흥국 주식, 투자등급·하이일드·EM채권), 실물/대체(인프라·부동산·사모대출), 인플레이션 헤지(물가지수채, 원자재)에 대한 표준 배분 가이드라인을 마련.
  • 통화헤지 정책 명시(예: 채권은 70~100% 헤지, 주식은 부분·무헤지 병행).

6) 해법 3 — ‘누수’ 차단과 연금소득화의 기본선 설정

퇴직연금의 목표는 ‘노후소득’이다. 이를 제도 설계에 직접 반영해야 한다.

  • 중도인출 엄격 제한/대체수단 마련: 주거·의료 등 불가피 사유만 허용하고, 나머지는 정책금융·저리대출 연계로 대체.
  • 휴면·소액계좌 통합: 자동 이관·통합, 일정액 미만 계정은 기금형 공적 플랫폼으로 이동.
  • 연금화(Annuitization) 기본선: 퇴직급여의 최소 50% 이상은 연금화를 기본으로 하되, 잔여분은 선택 폭 부여. 장수연금(85세 이후 지급형) 부분 의무화 또는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.
  • 세제중립의 재설계: 일시금보다 연금수령에 우대세율·장기수령 추가공제.
  • 휴먼캐피털 연계: 고령자 재취업·시간제·스킬업과 연동해 수급개시 시점 탄력 운영(수급연기 인센티브).

7) 해법 4 — 포용성 확대: 사각지대를 제도권으로

  • 1년 미만·단시간 근로자 의무 편입: 사업장 규모·근로형태 무관 의무화(행정 간소화와 패키지로).
  • 플랫폼·특고(특수고용) 보호: 표준계약서에 퇴직소득 적립 조항 반영, 플랫폼사가 일정 비율 매칭.
  • 저소득자 매칭지원: 근로장려금(EITC)과 연계해 정부 매칭 적립 도입(예: 본인 1에 정부 0.5~1 매칭, 소득구간별 차등).
  • 영세사업장 공동기금: 사용자 부담을 낮추는 세액공제·사회보험료 감면과 패키지로 참여 유도.

8) 해법 5 — 비용·품질의 표준화와 시장경쟁의 리디자인

  • 수수료 상한선 단계 인하: 운용·수탁·사무관리 총보수 캡을 설정하고, 대형 풀링 달성 시 자동 하향.
  • 공동 구매 플랫폼: 국가/공공 플랫폼이 집합운용사 선정을 경쟁입찰로 시행(성과·비용 둘 다 평가).
  • 성과평가의 ‘장기화’: 1·3·5·10년 누적 초과수익률과 하락장 방어력(드로우다운)을 동시에 평가, 단기 순위경쟁 억제.
  • 피듀셔리 듀티 강화: 이해상충 금지·수탁자 책임을 법제화하고, 위반 시 실효적 제재.

9) 정책·시장 동학을 고려한 실행 로드맵

단기(1년)

  • 기금형 도입 근거 마련, 시범 기금 2~3개 출범(중소·영세사업장 중심).
  • 디폴트옵션 표준 포트폴리오 고시(저비용 인덱스 중심), 수수료 공시 표준화.
  • 중도인출 사유 축소 및 정책대출 대체 수단 도입.

중기(2~3년)

  • 대체투자·글로벌 분산 확대, 성과연동 보수 체계 정착.
  • 연금화 50% 기본선 적용, 장수연금 도입.
  • 플랫폼·특고 편입과 정부 매칭 시범사업.

장기(5년)

  • 기금형 전국 확산, 총보수 0.3%p대 정착, 실질수익률 CPI+3% 목표 달성.
  • 연금화율 70%대, 중도인출율 대폭 축소, 소액계정 90% 이상 통합.

KPI 제안:

  • 순수익률(보수 차감 후) 5년 이동 평균 CPI+3% 이상
  • 총보수율 0.4%p 이하
  • 중도인출율 연 2% 이하
  • 연금화율 70%
  • 소액·휴면계정 통합률 90% 이상

10) 개인 투자자·기업·정부가 지금 당장 할 일

개인

  • 디폴트옵션을 TDF/저비용 분산형으로 지정, 수익률·보수 정기 점검.
  • 퇴직 시 일시금 최소화, 연금수령으로 세제·장수위험 헤지.
  • 이직 시 계좌 그대로 이관(포터빌리티).

기업

  • 사업장 단위 협상 대신 공동기금 참여로 보수 절감.
  • DC(확정기여)형 운영 시 자동가입·자동적립률 상향(오토에스컬레이션) 도입.
  • 근로자 교육·연 1회 성과 브리핑 의무화.

정부

  • 기금형 법제화·시범운영, 표준 디폴트 포트폴리오, 수수료 상한, 공시 표준화.
  • 세제 중립 재설계(연금수령 우대), 저소득 매칭, 플랫폼·특고 포섭.
  • 감독체계(피듀셔리 듀티·성과평가) 일원화와 강력한 제재.

결론: “국민연금+퇴직연금”의 듀얼 엔진을 켜야 60%대 소득대체율이 보인다

국민연금 43%는 출발점이다. 노후소득의 실질적 안전판을 만들려면 퇴직연금을 연금답게 바꿔야 한다. 지배구조는 기금형으로, 운용은 저비용·장기분산으로, 행태는 연금소득화 중심으로, 제도는 포용·투명·책임으로 재설계해야 한다. 이렇게 할 때만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을 보완해 추가 18~20%p의 소득대체율을 제공할 수 있고, 한국형 연금개혁은 비로소 완성 단계로 들어간다.
430조 원 규모의 자산이 “잠자는 돈”에서 “평생 월급”으로 바뀌는 순간, 고령사회 한국의 복지·성장·자본시장 모두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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